2014/05/21
VAN GOGH ET PIALAT
어쩌다 보니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 티비가 없고, 핫스팟 켜서 인터넷 이용하다 보니 쓸데없는 번잡스러움은 줄었는데 불쑥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땐 그 적막이 사라져줬으면 싶어서 잘 들리지 않아도 라디오를, 같은 영화를 앰비언스로 틀어놓는다. 언젠가는 뭐라도 들리겠지 하는 심정도 있지만, 암튼 그렇게 '소리'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즘 내게 뜻하지 않게 앰비언스 대우를 받는 영화는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다. 반 고흐가 죽기 전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시절을 담고 있다. 모두가 고흐의 불행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피알라는 그 불행을 재차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단지 그가 자신을 총으로 쏘기 전까지의 일상적 삶을 따라간다. 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그 아픔이 굳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을 때, 동생 테오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고 토로하는 장면에서, 결국 "인생이 너무 서글퍼"라는 말을 내뱉고 말았을 때, 정말 아프다. 아무도 자신의 그림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그 외로움.
피알라의 영화를 처음 본 건 2003년이었다. 그해에 피알라는 세상을 떠났다. 광주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회고전을 마련했고 거기서 몇 편 보았다. 첫 영화는 <우리는 함께 늙지 않을 것이다>였는데, 과격한 커플의 지긋한 싸움이 반복되었다. 이 커플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다투다가 서로 분을 참지 못하면 막말은 물론, 때리고 무언가를 던져서 상처를 냈다. 그래도 끝까지 헤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사랑>을 보았다. 상드린 보네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자와 쉽게 잠을 자는 소녀로 나왔고, 피알라가 직접 그의 아버지 역할을 맡아 등장했다. 이 영화의 인물들도 과격하다. 감정의 평온함을 벗어나면 때리고 던지고 욕을 퍼붓고 펑펑 운다. 이렇게 감정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해서 마지막에 파국을 맞이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또 반복될 감정과 관계의 파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피알라 영화 속에서의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세 번째로 본 영화는 <사탄의 태양 아래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원작이 바탕인,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사탄을 보는 사제. 이 영화에도 어딘지 모르게 그 과격함, 그래서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급작스러움이 있다. 어느 날 살인이 벌어지고, 사제는 종종 쇼크로 쓰러진다.
그리고 <반 고흐>를 보았다. 반 고흐는 피알라 감독이 영화를 찍기 시작한 이래로 언젠가는 꼭 다뤄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피해갈 수 없는, 결국엔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이것이야말로 나의 짐작.) 이런 수사가 달갑진 않지만, 이 영화는 피알라 감독의 슬픈 자화상이다. 나는 피알라의 영화를 흥미롭게 봐왔지만, 실제로 그는 그런 영화를 만들었지만, 왠지 그는 많이 고독했던 것 같다.(이 또한 나의 짐작.) 피알라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누벨바그 감독들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좀 많았지만 그들보다 훨씬 후에 영화를 만들었다. (피알라 1925년, 로메르가 1920년생으로 제일 나이가 많고, 고다르와 샤브롤 1930년, 리베트 1928년, 트뤼포가 1932년생으로 막내였지만 그들 중 제일 먼저 떠났다.) 누벨바그 감독들이 대개 50년대 말에 데뷔전을 치른 반면, 그는 60년대 후반에서야 뒤늦게 영화에 도착했다. 그는 감독이 되기 전, 그림을 그렸다. 화가였다. 그러고 나서 영화를 찍었다. 그림에서 영화로 자리를 옮겼을 때, 즉 캔버스에서 스크린으로 넘어갔을 때 그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지난해 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두 개의 기획 전시가 열렸다. 자크 드미와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였는데, 생전 두 감독을 향한 대중적 열망은 그들 사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알라는 반 고흐가 아니었다. 그는 사후에도 고독했다. 자크 드미 전시장은 북적였지만, 피알라 전시장은 입구를 들어선 순간부터 출구를 나오기 전까지 오로지 '나홀로 관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의 정적이 조금 의아해서 전시를 보는 중간중간 나 아닌 다른 이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으나, 결국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피알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몇 가지와 몸으로 체험한 어떤 감정들이 결국 피알라를 반 고흐적인 인물로 몰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반 고흐와 아르토: 사회적 자살"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반 고흐에게 가까이 다가갔던 또 다른 인물 아르토와 반 고흐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 너무 보고 싶고, 곧 볼 예정이긴 한데, 나는 내 나름대로 "반 고흐와 피알라" 커플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적적했을 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으니까 기꺼이. <반 고흐>의 마지막 대사처럼. C'était mon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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