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chambre verte
2014/10/01
AU REVOIR, PARIS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몽파흐나스 묘지에 다녀왔다. 아침 햇살이 너무 좋다. 눈부시다. 에릭 로메르, 모리스 피알라, 자크 드미, 마그리트 뒤라스, 수잔 손탁의 묘를 방문한 것으로 파리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작품이 여기 남았으니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파리를 떠나면 비록 파리에 내 몸은 없지만 서울에 돌아가서도 언제든 그 시간들이 되살아나 움직일 것이다. 모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한다. Au revoir.
2014/09/28
Tu es mon amie à PARIS
조카 조은이가 만들어준 토요일 저녁밥. 조은이는 독일 튀빙엔에서 독문학 교환학생으로 이번달부터 공부하고 있는데, 어학 수업을 마치고 2박 3일 일정으로 파리에 놀러왔다. 평소 음주를 즐기는 고모를 위해 트렁크에 독일의 맛나고 패키지 디자인 귀여운 병맥주를 넣어가지고. 완전 맛나서 술술 넘어감. 독일의 음식이 썩 맛있지는 않은지 해먹는 게 더 낫다며 거기에 있는 동안 요리 실력이 의도치 않게 늘 거 같다고 한다. 요즘 기숙사에서 지어 먹는 음식들 이야기하다가, 양파밥을 잘 짓는다며 그 맛을 꼭 보여주겠다는 야심을 되풀이해서 밝히더니 단박에 도착한 그날 저녁에 뚝딱 만들어냈다. 기름에 볶은 양파와 다진 소고기를 간장으로 간을 하고 덮밥식으로 흰쌀밥에 얹어 먹는 양파밥. 재료 구입에서 요리 완성까지, 모두 조은이가 제공.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라는 분위기의 저녁식사. 디저트로 과즙이 흘러넘치는 잘 익은 망고까지. "고모, 장성한 조카 있으니까 좋죠?" "응응. 그걸 말이라고. 고모는 니가 앞으로 더욱더 장성하길 빌 뿐이야." 나중에 조은이가 돈 많이 벌면 수제구두도 맞춰주기로 했다.
2014/09/25
Calçada do Duque à LISBONNE
두케 길(Calçada do Duque)은 꽤 가파른 곳이다. 그래서 계단이 많다. 계단으로 시작해서 계단으로 끝이 나는, 좀 재밌고 숨 차는 길. 이 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계단을 조금 오르고 나면 저 멀리 보이는 상 조르주 성과 그 아래로 펼쳐진 알파마 동네의 풍경이다. 이렇다 보니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상 조르주 성이 보이는 지점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론리플래닛 리스본 편 표지 사진도 와서 보니 여기서 찍은 거였다. 이 길에는 오래된 서점이 하나 있고, 낡은 레코드 음반을 파는 가게가 두 개 있고, 레스토랑은 대략 열 개쯤 되지 않을까 싶다. 리스본 여행하는 동안 자주 들렀던 길 중 하나. 누군가가 기타 연주를 하면 계단에 앉아서 듣고, 호객하는 레스토랑 직원이 배 안 고프냐고 먹고 가라고 하면 도미 한 마리 먹고, 갑작스레 굵은 비가 내리면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빗줄기가 잦아들길 기다리고, 정말 오래된 레코드 음반이 많았던 가게에 들어가 쉽게 들을 수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참으로 착한 가격 한 장에 50성팀 하는 7인치 미니 레코드 음반을 두 장 사기도 했던.
Bonne journée avec un café
파리에서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스웨덴 문화원 정원 카페에 앉아 진한 커피 한잔에 윤상의 오래전 노래를 들으며 졸린 오후를 탈출했다. 지난주까지 여기도 더웠다고 하던데, 오늘 하루 완연한 가을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살짝 쌀쌀하고 볕은 따갑고. 초가을의 파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서 오늘 하루도 엄청 걸어다녔다. 좋아하던 길을 따라 그냥 그렇게. 마레에서 시작해 상루이 섬과 시테 섬을 거쳐 퐁네프 다리를 지나 다시 퐁데자흐 다리를 건너 상제흐망데프헤를 통과해 뤽상부흐 공원을 찍고 무프타흐 시장에서 빵 하나 사먹고 몽주약국에 들러 엄마 줄 영양제 사고, 숙소가 있는 15구의 남쪽까지 걸어서 왔다. 여행을 마치고 익숙한 곳으로 오니 드문드문 잠깐씩 집에 온 것마냥 좋다.
2014/09/24
la fin et le début du longues vacances
늦여름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간다. 거기서 마지막 파리와 조우하고 서울 집으로 간다. 상말로를 시작으로 컹칼, 디넝, 헨느, 넝트, 니스, 엉티브, 상폴드벙스, 아흘르, 상헤미드프로벙스, 엑성프로벙스 그리고 포르투갈 리스본, 총 23일 동안의 여정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가려니까 그 시작이었던 9월의 첫날이 생각난다. 항상, 매번 끝에 서면 처음이 생각난다. 그리고 되낸다. 시간은 참 빠르구나. 파리 방을 정리하고 브르타뉴의 상말로로 가는 기차에 오르던 내 모습이 선명한데, 그보다는 추운 1월 말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던 내 모습이 더 선명한데. 서울로 돌아가려니 그때 가랑비에 젖어 축축하던 파리의 풍경이 자꾸 생각난다.
2014/09/22
Beco des Farinhas à LISBONNE
알파마(Alfama) 동네를 산책하다가 조금 진귀한 순간을 맞았다. Beco des Farinhas라는 이름의 좁은 골목이었는데, 문과 창문 사이, 창문과 창문 사이 벽에 사람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인지도. 문자만 있는 문패를 대신해 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 속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다. 누가 찍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모습이 한없이 자연스럽고 정겹고... 그들의 하루하루를, 이야기를 전혀 알 리 없는 낯선이가 봐도 뭔가 뭉클하고, 작은 놀라움, 탄성이 나왔다. 공간과 사진이 만들어낸 이런 스토리텔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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