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해에 한해서는 마지막 방문이 될 듯한, 뷔트 쇼몽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돌아오는 길, 5호선 지하철 안에서 마주친 프렌치 불독, 날 웃게 만든 녀석, Bonne soirée.
2014/08/29
2014/08/27
Parc Montsouris de cet après-midi
파리 14구 남쪽에 있는 몽수히 공원.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 <오후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클레오가 정서적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홀로 걷다가 잘생긴 군인 청년을 만나는 공원. 계속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오늘에야 갔다. 연못과 낮은 언덕과 오래된 나무와 다양한 식물들. 공원 한가운데로 지하철 RER 선이 지나간다. 그 가까이로 가면 지하철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19세기 중반에 심어진 저 플라타나스 나무의 자태가 꽤 우아해서 그 주변을 맴돌았다. 공원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갓난아기에서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파에 이르기까지, 인종이야 뭐 워낙 다양하고. 그 속엔 아마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범죄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녹지에 온 이상, 모두가 휴식을 취한다.
2014/08/26
du 20 au 23 août, BIARRITZ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비아리츠 해변. 지중해만큼 색이 선명하지 않았지만 덜 떠들썩하고 해수욕을 즐기기엔 적당한 물의 온도와 파도였다. 바다가 주인공인 이곳에 사는 사람들, 혹은 바캉스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틈날 때 해변에 와서 뜨거운 볕 아래에서 긴 시간 동안 몸을 태우고, 바다에 들어가 열기를 식히고, 해가 질 무렵에는 그 지는 해를 감상하느라 바다를 또 찾는 듯했다. 나 또한 녹색 광선을 보기 위해 석양을 기다리고,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바다의 끝을 바라보았으나 그 짧은 마법의 순간을 내 눈이 감지하지는 못한 듯하다. 간만에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보았다.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참 예뻤다. 골목골목에서 마주친, 어깨에 바스타올을 걸치고 한 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바다로 향하던 사람들의 단촐한 모습이 생각난다.
mon quartier
저녁 먹기 전에 동네 한바퀴 돌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갔다. 지갑, 핸드폰, 혹시 어디 앉아 쉬게 되면 읽을 책 한권, 이런 거 다 놔두고, 열쇠 하나 달랑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절기가 입추를 지나 가을을 향해 가는 터라 10시 넘어서도 환하던 하늘이 9시 넘으면 어둑해진다. 그동안 무프타흐 거리(Rue Mouffetard)와 데카르트 거리(Rue Descartes)만 주로 이용했던 터라 오늘은 몸도 가볍겠다 옆길로 새볼까 싶어서 콩트흐스카흐프 광장(Place de la Contrescarpe)에서 카흐디날 르무안느 거리(Rue du Cardinal Lemoine)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걷다가 오른쪽에 예쁜 골목이 나오길래 거리 이름표를 보니 홀랑 거리(Rue Rollin)였다. 카흐디날 르무안느, 홀랑, 이 두 거리에서 오늘 저녁 발견한 이름들은 데카르트, 벙자망 퐁탄느,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퐁탄느라는 시인은 오늘 처음 알게 됐다. 홀랑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좁고 짧은 골목이다. 이 거리에서 데카르트가 살았던 집, 그리고 퐁탄느라는 시인이 살았던 집을 만났다. 카흐디날 르무안느 거리에서는 헤밍웨이와 제임스 조이스가 살았던 집을 발견했다. 파리를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지 않고 그냥 머물렀다 하더라도 아무튼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 파리가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느낌도 받는다. 시간이 공간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누군가를 지켜주는 듯하다. 단지 건물 입면에 붙어 있는 작은 사각 판에 ‘누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다’라고 쓰인 간단한 글귀를 보는 건데도 일단 이런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시선이 머문다. 데카르트 거리에는 시인 베흘렌느가 살다가 생을 마감한 집도 있다.
올해 파리에서 7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머물렀다. 9월 한 달 브르타뉴, 코트 다쥐흐, 그리고 다시 프로벙스를 여행하고,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 파리에서 무프타흐 시장이 바로 앞에 있고, 뤽상부흐 공원과 팡테옹 광장이 멀지 않고, 노트르담 성당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좋은 퐁 드 라 투흐넬(Pont de la Tournelle)이 천천히 걸어서 20분 거리인, 썽시에 거리 49번지(49 Rue Censier) 맨꼭대기층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언제든 불쑥 그리울 것 같다. 파리에서 많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걸어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보기 좋았다. 그래서 많이 걸을 수 있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동네 골목들을 열심히 사진에 담으려 한다.
2014/08/14
des aubergines blanches
엑성프로벙스 아침 시장에서 본 흰 가지. 지금까지 흰 가지란 게 있는지 몰랐는데. 그럼 우리가 늘상 먹는 그 가지는 검은 가지겠다. 검은 가지, 흰 가지, 둘 다 맛은 비슷한가. 가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프로벙스의 그 다채로운 채소 중에서 유독 이 귀여운 흰 가지에 눈길이.
아! 그러고 보니 아흘르의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에서 오리고기 먹을 때 레몬이 구워져 나왔길래, 이 사람들은 레몬도 익혀 먹나 보네, 하고 먹어보니 맛은 호박이었던, 모양도 색도 레몬 같은 호박도 있었네.
2014/08/11
du 30 juillet au 1er août, AIX-EN-PROVENCE
아흘르에 이은 프로벙스 여행의 두 번째 도시, 엑성프로벙스.
나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한 이곳이 정말 좋다.
일년 만에 다시 찾았다는 것도 조금 감회가 남다르고
지도보다는 기억감각에 기대어 길을 더듬더듬 찾는 재미까지.
2014/08/10
A la plage de CASSIS
드디어 닿은 지중해
늦은 오후의 햇빛은 불처럼 뜨겁고
바다는 얼음처럼 차가워 몸을 흠뻑 적시기엔 많이 떨리고
파도는 속도감 있게 스윙스윙
사람들은 각자 자기 편한 자세로 해변에 누워 무언가를 읽거나 수다를 떨거나
지중해는 정말 깊고 푸르구나
7월 말의 여름
2014/08/09
Les Baux de Provence
아흘르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낮은 산중에 있는 중세 마을, 레 보 드 프로벙스. 아흘르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달리면 하얀 바위산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지방을 많이 다녀본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특히 프로벙스 지역에 이런 형태의 마을이 꽤 있는 것 같다. 즉 바위산 혹은 언덕 위에 지은, 고립된, 고독한 마을. (이번에 가고 싶었으나 몇 년 후 본격 프로벙스 여행 때를 위해 고이 남겨둔) 뤼베롱 지방의 고흐드Gordes도 그렇고. 김화영의 <여름의 묘약>을 보니 이해가 된다. 그의 책에 따르면, 프로방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자신의 책 <프로방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고 한다. "먼 옛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고 탐내고 침략하던 땅인 프로방스는 수많은 위험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경계와 방어의 편의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언덕 위의 마을들이다." 알고 보니 레 보 드 프로벙스는 중세 무렵, 여기서 번영을 누렸던 보Baux 가문이 거느린 곳이었다. 이런 오래된 마을이 옛 모습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다. 하지만 적막하고 고독하다. 마을 입구 초입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로 쫙 펼쳐진 낮은 석회암 산의 모습이 꽤 장관이다. 프랑스의 산들은 수평으로 길고 넓게 펼쳐져 있다. 한국의 산은 높이 우뚝 솟아 있는 반면, 여기 산들은 모로 누워있는 듯하다. 한국의 산은 입상, 프랑스 산들은 와상.
레 보 드 프로벙스 가는 길에 생긴 에피소드 하나. 안내방송도 안 나오고, 우리는 초행길이고, 승객은 친구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이고, 표 끊을 때 레 보 드 프로벙스 간다고 운전기사에게 얘기했으니 정거장에 다다르면 알려주겠지, 라는 야무진 생각으로, 그야말로 그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듯하다는 촉이 왔을 때,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더랬다. 운전기사에게 레 보 드 프로벙스 지났냐고 물어보니, 그렇다는 것. 자기는 운전하느라 너희에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1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지금이라도 내리겠냐고 해서 어느 이름 모를 국도 한복판에 내렸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는 날씨에 1시간 가까이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 지나친 만큼 되돌아 걸어오면서 본, 그 많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그 풍경이 오히려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한. 살면서 언제 또 낯 모르는 그 누구의 올리브밭에 들어가 올리브나무 아래서 빗방울을 피하며 풀밭 위 점심식사를 하겠냐고. 하지만 땅이 워낙 마르고 풀들이 거칠어, 황무지에서의 성난 식사였다.
L'Amphithéâtre(les arènes)
"로마, 안 가봐도 되겠다!"
아흘르의 원형경기장. 로마에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보는 원형경기장이었다. 확실히 고대 사람들이야말로 스펙터클한 감각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보수 공사 때문에 거의 빈틈없이 철골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아흘르 사람들과 전세계 관광객들에게 유흥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지어진 지 2000년 가까이 된 이 오래된 건물은 풍경을 보기에 딱 적당한 높이의 전망대 역할까지 한다. 경기장 내 꼭대기로 올라가 내려다본, 론강의 물줄기가 감싸고 있는 아흘르 시내 전경은 아름다웠다. 파리에 세느강이 있다면 아흘르에는 론강이 있다.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깊은 밤 검은 강물 위에 샛노랗게 물든 그 별빛을, 그러고 보니 나는 보지 못했다.
2014/08/08
les murs d'Arles
아흘르 골목에서 만난 다양한 사진 전시 포스터들. 아흘르에서는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큰 사진 축제가 열린다. 원형경기장과 고대극장이 마을의 중요한 랜드마크로서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지만, 걷다가 좁은 골목으로 방향을 틀면 곳곳에 붙은 멋스러운 사진 포스터들 때문에 또 이 오래된 도시가 컨템포러리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좁은 골목은 그대로 하나의 오픈 갤러리가 되고, 이미지들은 시차를 넘어 묘한 조화를 이룬다.
2014/08/06
de 28 au 30 juillet, Arles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4박 5일 프로벙스 여행의 시작, 아흘르.
아침 7시 11분 아비뇽 행 TGV를 타고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도착. 거의 7월 한달 동안 진행된 연극제가 바로 지난밤에 끝난 아비뇽의 거리는 새벽까지 축제의 끝을 즐기다가 모두 늦잠을 자는 건지 꽤 한산했다. 인적은 드물고 골목 곳곳에 붙어 있는 연극 포스터만이 이제 막 도착한 여행자를 맞아주는 듯한. 점심만 먹고 아흘르 가는 기차에 올랐다. 20분 정도 달린 후, 드디어 프로벙스의 색이구나, 싶은 작은 마을에 도착. 첨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집에 짐을 풀고 카메라 들고 동네 산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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