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26

mon quartier

저녁 먹기 전에 동네 한바퀴 돌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갔다. 지갑, 핸드폰, 혹시 어디 앉아 쉬게 되면 읽을 책 한권, 이런 거 다 놔두고, 열쇠 하나 달랑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절기가 입추를 지나 가을을 향해 가는 터라 10시 넘어서도 환하던 하늘이 9시 넘으면 어둑해진다. 그동안 무프타흐 거리(Rue Mouffetard)와 데카르트 거리(Rue Descartes)만 주로 이용했던 터라 오늘은 몸도 가볍겠다 옆길로 새볼까 싶어서 콩트흐스카흐프 광장(Place de la Contrescarpe)에서 카흐디날 르무안느 거리(Rue du Cardinal Lemoine)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걷다가 오른쪽에 예쁜 골목이 나오길래 거리 이름표를 보니 홀랑 거리(Rue Rollin)였다. 카흐디날 르무안느, 홀랑, 이 두 거리에서 오늘 저녁 발견한 이름들은 데카르트, 벙자망 퐁탄느,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퐁탄느라는 시인은 오늘 처음 알게 됐다. 홀랑 거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좁고 짧은 골목이다. 이 거리에서 데카르트가 살았던 집, 그리고 퐁탄느라는 시인이 살았던 집을 만났다. 카흐디날 르무안느 거리에서는 헤밍웨이와 제임스 조이스가 살았던 집을 발견했다. 파리를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지 않고 그냥 머물렀다 하더라도 아무튼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 파리가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느낌도 받는다. 시간이 공간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누군가를 지켜주는 듯하다. 단지 건물 입면에 붙어 있는 작은 사각 판에 ‘누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다’라고 쓰인 간단한 글귀를 보는 건데도 일단 이런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시선이 머문다. 데카르트 거리에는 시인 베흘렌느가 살다가 생을 마감한 집도 있다.
올해 파리에서 7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머물렀다. 9월 한 달 브르타뉴, 코트 다쥐흐, 그리고 다시 프로벙스를 여행하고,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 파리에서 무프타흐 시장이 바로 앞에 있고, 뤽상부흐 공원과 팡테옹 광장이 멀지 않고, 노트르담 성당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좋은 퐁 드 라 투흐넬(Pont de la Tournelle)이 천천히 걸어서 20분 거리인, 썽시에 거리 49번지(49 Rue Censier) 맨꼭대기층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언제든 불쑥 그리울 것 같다. 파리에서 많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걸어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보기 좋았다. 그래서 많이 걸을 수 있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동네 골목들을 열심히 사진에 담으려 한다.

댓글 4개:

  1. 비현실적이에요. ㅎㅎ 용감했기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인듯. 남은 시간도 참 좋겠네. 부러워요. 지난 주말에 쭈꾸미에 계란찜 먹고 왔어요. 역시 내가 아는 쭈꾸미 중에 젤 맛있는 거 같애. 희영씨 생각 드문드문 하면서 그 동네 돌아다녔어요. 여행도 건강히 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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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 쭈꾸미...ㅋㅋ 그 집 참 맛나게 잘하죠잉. 울동네 여전한지...
    여행 잼나게 하다가 갈게요. 그때 쭈꾸미 대자로 먹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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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쭈꾸미 대자 완전 좋아요!!!
      ^____^ 건강히 잘 다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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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건강하게 이틀째 여행하고 있는 중이에요.^^ 브르타뉴에 있어요. 여기 또한 넘 좋아. 근데 쭈꾸미 진짜 먹고프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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