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9

Les Baux de Provence

 
 
 
 
 
아흘르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낮은 산중에 있는 중세 마을, 레 보 드 프로벙스. 아흘르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달리면 하얀 바위산이 나타난다. 프랑스의 지방을 많이 다녀본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특히 프로벙스 지역에 이런 형태의 마을이 꽤 있는 것 같다. 즉 바위산 혹은 언덕 위에 지은, 고립된, 고독한 마을. (이번에 가고 싶었으나 몇 년 후 본격 프로벙스 여행 때를 위해 고이 남겨둔) 뤼베롱 지방의 고흐드Gordes도 그렇고. 김화영의 <여름의 묘약>을 보니 이해가 된다. 그의 책에 따르면, 프로방스의 작가 장 지오노가 자신의 책 <프로방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고 한다. "먼 옛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고 탐내고 침략하던 땅인 프로방스는 수많은 위험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경계와 방어의 편의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 언덕 위의 마을들이다." 알고 보니 레 보 드 프로벙스는 중세 무렵, 여기서 번영을 누렸던 보Baux 가문이 거느린 곳이었다. 이런 오래된 마을이 옛 모습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다. 하지만 적막하고 고독하다. 마을 입구 초입에서 바라보는, 파노라마로 쫙 펼쳐진 낮은 석회암 산의 모습이 꽤 장관이다. 프랑스의 산들은 수평으로 길고 넓게 펼쳐져 있다. 한국의 산은 높이 우뚝 솟아 있는 반면, 여기 산들은 모로 누워있는 듯하다. 한국의 산은 입상, 프랑스 산들은 와상.
 
레 보 드 프로벙스 가는 길에 생긴 에피소드 하나. 안내방송도 안 나오고, 우리는 초행길이고, 승객은 친구와 나를 포함해 단 세 명이고, 표 끊을 때 레 보 드 프로벙스 간다고 운전기사에게 얘기했으니 정거장에 다다르면 알려주겠지, 라는 야무진 생각으로, 그야말로 그분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듯하다는 촉이 왔을 때,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더랬다. 운전기사에게 레 보 드 프로벙스 지났냐고 물어보니, 그렇다는 것. 자기는 운전하느라 너희에게 신경쓰지 못했다고. 1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지금이라도 내리겠냐고 해서 어느 이름 모를 국도 한복판에 내렸다. 하지만 강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는 날씨에 1시간 가까이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 지나친 만큼 되돌아 걸어오면서 본, 그 많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그 풍경이 오히려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한. 살면서 언제 또 낯 모르는 그 누구의 올리브밭에 들어가 올리브나무 아래서 빗방울을 피하며 풀밭 위 점심식사를 하겠냐고. 하지만 땅이 워낙 마르고 풀들이 거칠어, 황무지에서의 성난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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